나눔운동
제목 [특별기고]발가락이 아픈 것과 홀로 고립됨은 하나다
작성자 한국사회적경제씨앗재단
날짜 2017-11-30 14:49:51      조회  0

평소 한 두 달 마다 고혈압약을 타러 오시던 독거 할머니께서 의원에 한동안 오시지 않아 방문진료를 갔다.

할머니는 평소 등이 많이 굽어 앞으로 45도 정도 숙인 채 유모차를 끌고 아주 느릿느릿 걸으며 간신히 다니신다.

댁에서 밝음의원까지 일반 성인이라면 20분이면 올 거리를 2시간 동안 걸어오신다. 대단하시다. 느릿느릿 당신의 속도로 스스로 의원에 다니시고, 돈을 찾으러 은행에 다시닐 수 있으니 말이다.

할머니는 독거 어르신이 많이 거주하는 봉산동에 사신다. 성인 키보다 조금 높은 야트막하고 오래된 집들이 줄지어 붙어 있다. 요즘 도시재생사업 지역으로 관심을 받는 낙후된 동네이다.

할머니댁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문까지 1.5미터의 작은 마당이 있다. 그 작은 마당공간의 한쪽은 푹 꺼져 구덩이가 파였고, 다른 쪽에는 아주 작은 유모차 보행기가 놓여있었다.

얼마 전에는 유모차를 끌고 그 구덩이를 피해가다가 넘어지셨다고 한다.

할머니께 생활하면서 힘들고 불편하신 점이 무엇인지, 건강은 어떠하신지 여쭤보았다.

일어날 때 어지럽고, 유모차를 끌고 좀 걸으면 발이 아파서 못 걷겠다고 하신다.

양말을 벗겨 살펴보니 엄지발가락이 두 번째 발가락 밑으로 들어가 발등 위에서 내려다보면 발가락이 4개만 보였다.

심한 무지외반증에 1.5미터 작은마당 한쪽이 푹 꺼져있으니 낙상은 또 발생할 것이다.




‘발가락이 아프다’는 말씀을 듣고 주거환경을 살펴보니, 움푹 패인 마당, 어지러움, 무지외반증, 보행의 어려움, 홀로 고립됨은 하나로 연결되었다. 별개의 문제목록이 아니다.

의학적인 검사와 치료 뿐 아니라, 어르신의 낙상위험을 예방하는 생활환경 조성이 더욱 더 중요해보였다.

우선 혈액검사를 해서 빈혈 정도를 알아보고, 작은 마당의 움푹 패인 곳을 조합원 자원활동을 통해 해결할 방법을 찾고, 무지외반증은 수술을 바로 권하기 보다 발가락 사이에 끼우는 무지외반증 교정기를 착용하도록 준비해 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가까운 독거노인 그룹홈 ‘봉산동할머니집’에서 열리는 목요일 주간사랑방에 승용차로 모시고 갔다.

홀로 사시는 어르신이 또 다른 친구를 만나 홀로 살지만, 고립되지 않는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추석이 지나 두 번째 방문 진료를 갔다.

움푹 패인 마당은 깨끗이 시멘트로 메워져있었다. 추석동안 멀리 타 도시에 사는 아들이 와서 메꾸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밝고 얼굴표정도 한결 좋아졌다. 무지외반증 교정보조기를 할머니 발에 끼워드리고 1주일간 사용하면서 보행시 통증이 감소하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마당은 이미 안전해졌고 발가락통증이 보조기 착용으로 해소된다면 일상생활을 스스로 하실 수 있는 자신감이 커질 거 같았다.

1주일 후 세 번째 방문진료를 갔다.

할머니는 무지외반증 보조기를 착용하고 걸으니, 발가락 통증이 많이 가셔서 걸을 만 하다고 하신다.

보행을 좀 더 수월하게 하실 수 있게 되어서 한 가지 더 권해보았다.

밝음의원 만큼 가까운 ‘봉산동할머니집’에 걸어서 가보시겠어요? 스스로 걸어가실 수 있는지, 어르신의 느릿느릿한 발걸음 속도에 맞추어 건강코디네이터가 함께 봉산동할머니집까지 동행해보았다. 2시간이 걸렸다.

할머니는 발이 좀 아리다고 하셔서, 좀 무리일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대단하시다. 2시간이 걸리지만, 안전하게 걸을 수 있어 봉산동할머니집 주간사랑방이 내집처럼 편하게 들르고 싶은 곳이 되면 좋겠다.

매주 편하게 갈 곳이 있고, 친구가 있고, 놀거리가 있다는 것은 건강한 생활의 작은 버팀목이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건강한 관계’를 맺어가는 생활건강 거점을 연결해드리고 싶었다.

고령사회 독거노인의 고립문제는 아주 구체적이다. 해법도 구체적인 고립의 주민이야기로부터 찾아가야 한다. 첫발을 어떻게 뗄 것인가? 공동과제를 함께 해결해 본 공통경험이 부재한 상황에서 작게 시작해보면 좋겠다.

작은 봉산동 동네를 현장으로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복지관, 주민자체센터, 보건소 등 다양한 자원들이 연결되어 1~2달마다 주민건강돌봄 집담회를 열어보는 상상을 해본다.

석달 시범사업을 해봐도 좋다.

‘주민이 주민을 돌보는’ 주민복지활동은 ‘관계형 복지’활동이다.

아픈 주민을 생활건강의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도시재생은 또다른 투기의 재원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가장 아픈 이웃을 품어가는 마을의 힘을 키워내가는 것이어야 한다.



글쓴이 :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밝음의원 원장_김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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